화학 시약 대신 ‘온도’만으로 DNA 합성 가능하다
“DNA를 만들려면 복잡한 화학 공정이 필수다.”
바이오 분야에서 수십 년간 당연하게 여겨졌던 상식을 국내 연구진이 뒤집었다. 한국 연구진이 세계 최초로 온도만으로 원하는 DNA를 합성하는 원천기술을 개발했다. 연구팀은 이 기술을 활용해 배송 과정의 온도 변화를 전력 없이 기록하는 ‘DNA 온도 블랙박스’도 구현했다.
우리 대학은 공학생물학대학원 최영재 교수 연구팀이 ㈜에이티지라이프텍(대표 류태훈), 이화여자대학교(총장 이향숙) 생명과학과 최한솔 교수 연구팀과 공동으로 온도만 조절해 원하는 DNA 서열을 합성하는 원천 플랫폼 기술을 개발했다고 7일 밝혔다.
DNA는 사람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의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설계도’다. 과학자들은 원하는 DNA를 만들어 질병을 진단하고 신약을 개발하거나, 새로운 기능을 가진 미생물을 만드는 등 다양한 바이오 기술에 활용한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DNA를 구성하는 네 가지 염기(A·T·G·C)를 하나씩 연결할 때마다 화학 시약을 넣고 씻어내는 과정을 반복해야 했다. 이 때문에 수억 원대의 자동 DNA 합성 장비와 전문 연구시설이 반드시 필요했다.
연구팀은 이러한 한계를 해결하기 위해 ‘특정 온도에서만 반응하는 헤어핀 DNA’를 개발했다. 위 헤어핀 DNA는 머리핀처럼 접혀 있다가 일정한 온도에서만 펼쳐지는 특수한 DNA 구조다. 연구팀은 서로 다른 온도에서 작동하는 여러 종류의 헤어핀 DNA를 하나의 시험관에 넣고, 온도만 순서대로 바꾸는 방식으로 원하는 DNA를 차례대로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
기존에는 DNA를 만들기 위해 화학 시약을 계속 교체해야 했다면, 이번에는 처음부터 필요한 재료를 하나의 시험관에 넣어두고 온도만 바꾸면 DNA가 순서대로 만들어지는 새로운 방식을 구현한 것이다. 복잡한 시약 교체나 대형 장비 없이도 일반적인 온도 조절 장치만으로 DNA를 합성할 수 있는 길을 연 셈이다.
이번 연구의 가장 큰 의미는 DNA를 만드는 ‘방법’ 자체를 바꿨다는 점이다. 지금까지는 화학 시약이 DNA 합성 과정을 하나하나 제어했다면, 이번에는 누구나 쉽게 조절할 수 있는 ‘온도’가 그 역할을 대신하도록 만든 것이다. 이 기술이 발전하면 DNA를 만드는 비용과 시간을 크게 줄여 합성생물학과 유전자 연구는 물론, 신약 개발과 정밀의료 등 다양한 바이오 산업의 진입 장벽도 크게 낮출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팀은 개발한 기술이 실제로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무전원 ‘DNA 온도 블랙박스’도 구현했다. 이 장치는 평소에는 동결건조 상태로 보관하다가 사용 직전 물 한 방울만 떨어뜨리면 작동을 시작한다. 이후 배송 과정에서 언제, 얼마나, 어떤 순서로 온도가 변했는지를 DNA 서열에 자동으로 기록한다. 또한 일정 온도 이상에 노출되면 색이 변해 이상 여부를 눈으로 바로 확인할 수 있어 백신과 바이오의약품, 세포치료제, 신선식품 등 저온 유통이 중요한 제품의 품질 관리에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최영재 교수는 “이번 연구는 화학 시약 대신 온도만으로 DNA를 합성할 수 있다는 새로운 원리를 제시한 세계 최초의 원천기술”이라며 “DNA 합성을 더욱 쉽고 경제적으로 만들어 바이오 기초 연구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무전원 DNA 온도 블랙박스와 같은 새로운 산업 응용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에는 KAIST 최장호 연구원과 GIST 김진호 박사과정생이 공동 제1저자로 참여했으며,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7월 2일 자 게재됐다.
※ 논문명 : Programmable one-pot polymerase-mediated DNA synthesis via temperature control
※ DOI: https://doi.org/10.1038/s41467-026-74890-4
※ 관련동영상I: https://drive.google.com/file/d/1bUtzC83qIm1k-hNFKTb09yFPhfsD4iU-/view?usp=drive_link
※ 저자 : 최장호(KAIST, 공동 제1저자), 김진호(GIST, 공동 제1저자), 최한솔(이화여자대학교, 교신저자), 최영재(KAIST, 교신저자)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원하는 미래유망 융합기술 파이오니아사업, 바이오파운드리기반기술개발사업, 신진연구자지원사업, 글로벌기초연구실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2나노 반도체보다 작은 DNA ‘분자 컴퓨터’ 구현...바이오 컴퓨팅 응용 기대
지금까지 분자 수준의 DNA 회로는 암 관련 물질의 존재 여부를 판단하는 등 간단한 기능에 활용됐지만, 한 번 반응하면 다시 사용할 수 없는 한계가 있었다. 우리 대학 연구진은 이러한 한계를 넘어, 머리카락보다 수만 배 작은 DNA로 계산과 기억을 동시에 수행하는 ‘2나노 반도체보다 작은 초미세 분자 컴퓨터’를 구현했다. 향후 질병 진단 등 바이오·의료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는 새로운 컴퓨팅 기술로 발전할 가능성을 제시했다.
우리 대학은 공학생물학대학원 최영재 교수 연구팀이 DNA를 기반으로 한 바이오 트랜지스터(Bio-transistor·신호를 받아 계산을 수행하는 반도체 핵심 소자의 바이오 버전)를 개발하고, 이를 통해 계산과 정보 저장을 동시에 수행하는 새로운 분자 회로를 구현했다고 22일 밝혔다.
최근 반도체 공정이 2나노미터(nm, 10억분의 1미터) 수준에 도달하면서 초미세화 기술이 물리적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에 따라 학계에서는 기존 실리콘 기반 기술을 넘어, 분자 수준에서 정보를 처리하는 새로운 컴퓨팅 방식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DNA는 특정 염기끼리만 짝을 이루는 성질(상보적 염기 결합, complementary base pairing)을 이용해 원하는 반응만 정확하게 일어나도록 설계할 수 있으며, 염기 간 간격이 0.34나노미터에 불과해 차세대 초고집적 정보 처리 소재로 주목받아 왔다. 그러나 기존 DNA 기반 회로는 반응이 한 번 일어나면 소모되는 ‘일회성’ 특성으로 인해 연속적인 정보 처리나 복잡한 계산에는 한계가 있었다.
연구팀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입력 신호에 따라 DNA 분자가 서로 결합하거나 분리되면서 배열이 바뀌고, 그 상태가 유지되도록 설계했다. 이를 통해 변화된 분자 상태 자체가 정보를 저장하는 역할을 하며, 이후 연산에도 활용될 수 있도록 했다. 즉, 별도의 초기화 과정 없이도 실시간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리셋 없는(reset-free·초기화 없이 이전 상태를 유지하는)’ 회로를 구현한 것이다.
이번 연구는 반도체의 핵심 소자인 트랜지스터(Transistor·전기 신호를 제어하고 증폭하는 소자)의 기능을 DNA 수준에서 구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단순한 화학 반응을 넘어, 분자가 스스로 정보를 처리하고 기억하는 ‘지능형 바이오 시스템’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최영재 교수는“이번 연구는 DNA를 활용한 ‘분자 컴퓨터’ 구현 가능성을 한 단계 끌어올린 사례”라며 “바이오 컴퓨팅과 의료 기술 분야 전반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에는 KAIST 공학생물학대학원 임성순 교수, 김태훈 연구원, 정상은 연구원, 김시온 연구원과 GIST 김우진 석박사통합과정생, 심준호 석사과정생이 공동 저자로 참여했으며, 최영재 교수가 교신저자를 맡았다.
KAIST 공학생물학대학원 임성순 교수, 김태훈 연구원, 정상은 연구원, 김시온 연구원, GIST 김우진 석박통합과정생, 심준호 석사과정생이 공동 저자로 참여했으며, 최영재 교수가 교신저자를 맡았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Science Advances)’에 2026년 4월 1일에 게재됐다.
※ 논문명: Reset-free DNA logic circuits for real-time input processing and memory. DOI: 10.1126/sciadv.aeb1699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원하는 미래유망융합기술파이오니어사업, 교육부 지원 기초연구사업과 KAIST Quantum+X 융합 연구개발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유전자 가위로 유전자 켜고 끄기 동시에 가능하다
유전자를 켜고 끈다는 것은 마치 전등 스위치를 올리고 내리듯, 세포 속 유전자의 작동 여부를 조절하여 켜면 단백질이나 물질 생산이 활발해지고, 끄면 생산이 억제된다. 한국 연구진이 기존에 ‘끄는 기능’에 치중됐던 한계를 넘어, 유전자를 켜고 끄는 것을 동시에 구현할 수 있는 혁신적 시스템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며 합성생물학 기반 바이오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었다.
우리 대학 공학생물학대학원(생명과학과 겸임) 이주영 교수와 국가과학기술연구회(이사장 김영식) 산하 한국화학연구원(원장 이영국) 노명현 박사 공동연구팀이 대장균에서 원하는 유전자를 동시에 켜고 끄는 것이 가능한 새로운 이중모드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가위 시스템을 개발했다고 21일 밝혔다.
대장균은 실험이 쉽고 산업적 활용으로 바로 이어질 수 있는 대표적인 미생물이다. 한편, 유전자 가위(CRISPR) 기술은 21세기 생명공학의 가장 혁신적인 도구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합성생물학의 기반이 되는 박테리아는 구조가 단순하고 빠르게 증식하면서도 다양한 유용 물질을 생산할 수 있다. 따라서 박테리아에서의 유전자 활성화는 ‘미생물 공장’을 설계하는 핵심 기술로, 산업적 가치가 매우 크다.
합성생물학의 핵심은 생명체의 유전자 회로를 프로그래밍하듯 설계해 원하는 기능을 수행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마치 전자회로에서 스위치를 켜고 끄듯, 특정 유전자는 활성화하고 다른 유전자는 억제해 대사경로를 최적화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연구팀이 개발한 이중모드 유전자 가위는 바로 이러한 정밀한 유전자 조절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도구다.
기존 유전자 가위(CRISPR)는 주로 ‘끄기(억제)’ 기능에 특화되어 유전자 발현을 막는 데는 뛰어났지만, 반대로 유전자를 켜는 기능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또한 CRISPR가 작동하려면 특정 DNA 인식 서열(PAM, protospacer adjacent motif)이 필요한데, 기존 시스템은 PAM 인식 범위가 좁아 조절할 수 있는 유전자의 폭이 제한적이었다.
게다가 진핵세포(사람·식물·동물 세포)에서는 CRISPR 기반 활성화(CRISPRa)가 어느 정도 발전했지만, 박테리아에서는 내부 전사조절 메커니즘 차이로 유전자 ‘켜기’가 제대로 되지 않는 한계가 있었다.
연구팀은 이 한계를 극복하고자 표적을 확장하여 더 많은 유전자에 접근 가능하도록 하고 대장균 단백질을 활용하여 유전자 활성화 성능을 대폭 향상하였다.
그 결과, 기존에는 “끄는 것 위주”였던 유전자 가위가, 이번에는 켜기와 끄기를 동시에 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개발된 시스템의 성능 검증 결과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유전자를 켜는 실험에서는 최대 4.9배까지 발현량이 증가했고, 끄는 실험에서는 83%까지 억제할 수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두 개의 서로 다른 유전자를 동시에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한 유전자는 8.6배 활성화하면서 동시에 다른 유전자는 90% 억제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팀은 이 기술의 실용성을 입증하기 위해 항암효과가 있는 보라색 색소인 ‘바이올라세인’ 생산량 늘리기에 도전했다. 대장균의 모든 유전자를 대상으로 하는 대규모 실험을 통해 바이올라세인 생산에 도움이 되는 유전자들을 찾아냈다.
그 결과, 단백질 생산을 도와주는 ‘rluC’ 유전자를 켜면 2.9배, 세포를 분열하고 나누어지도록 하는 ‘ftsA’ 유전자를 끄면 3.0배 생산량이 늘어났다. 두 유전자를 동시에 조절했을 때는 더욱 큰 시너지 효과가 나타나 무려 3.7배의 생산량 증가를 달성했다.
한국화학연구원 노명현 박사는 “박테리아에서도 정밀한 유전자 활성화가 가능해졌다”며 “합성생물학 기반 바이오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주영 교수는 “이번 연구는 유전자 가위와 합성생물학을 결합해 미생물 생산 플랫폼의 효율을 크게 높인 성과”라며 “하나의 시스템으로 복잡한 유전자 네트워크를 제어할 수 있어 새로운 연구 패러다임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또한 “이번 기술은 다른 박테리아 종에서도 작동이 확인돼, 바이오 의약품·화학물질·연료 생산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우리 대학 생명과학연구소 문수영 박사후 연구원이 제1 저자인 이번 연구 결과는 분자생물학 분야 최고 권위지인 ‘Nucleic Acids Research'에 지난 8월 21일 온라인 게재됐다.
※ 논문명: Dual-mode CRISPRa/i for genome-scale metabolic rewiring in Escherichia coli
(저자 정보 : 문수영(KAIST, 제1 저자), 김미리(한국화학연구원), 안난영(KAIST), 노명현(한국화학연구원, 교신저자), 이주영(KAIST, 교신저자) 총 5명)
※DOI: 10.1093/nar/gkaf818
한편,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연구재단과 보스턴코리아 공동연구개발 사업의 지원으로 수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