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수소결합이 ‘결합 1등’ 구리 밀어냈다…금속 선택의 새 길 열어
늘 ‘결합 1등’이던 구리가 밀려났다. 우리 대학 연구진이 금속과 직접 결합하는 구조는 그대로 둔 채, 주변의 약한 수소결합만 조절해 구리가 가장 안정적으로 결합한다는 오랜 금속 안정성 순서를 뒤집는 데 성공했다. 원하는 금속을 골라내는 분리 기술과 촉매 설계 등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 대학은 화학과 백윤정 교수 연구팀이 비타민 B2의 핵심 구조인 플라빈(flavin)을 이용해 금속을 중심으로 여러 분자가 둘러싸 결합한 ‘금속 착물’을 개발하고, 금속 주변의 수소결합(hydrogen bonding)을 조절해 기존 ‘어빙-윌리엄스 계열(Irving–Williams series)’과 반대되는 금속 안정성 경향을 구현했다고 6일 밝혔다.
어빙-윌리엄스 계열은 철·니켈·구리처럼 다른 물질과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하는 전이금속이 주변 분자와 얼마나 안정적으로 결합하는지를 순서로 나타낸 경험 법칙이다. 망간(Mn), 철(Fe), 코발트(Co), 니켈(Ni), 구리(Cu), 아연(Zn) 가운데 일반적으로 망간에서 구리로 갈수록 안정성이 높아지고, 특히 구리가 매우 안정한 결합을 만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차이는 금속 안에서 전자들이 어떻게 배치돼 있는지를 뜻하는 ‘전자 구조(electronic structure)’에 따라 나타나는 것으로 이해돼 왔다. 다시 말해 어떤 금속이 더 잘 붙는지는 각 금속이 원래 가진 특성에 크게 좌우된다고 본 것이다.
지금까지 이 순서를 바꾸려면 금속을 직접 붙잡는 분자인 ‘리간드(ligand)’를 새롭게 만들거나, 금속과 주변 분자가 결합하는 방식인 ‘배위 구조(coordination structure)’를 바꾸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연구팀은 금속과 직접 결합하는 부분이 아니라 그 바깥에서 작용하는 ‘수소결합’에 주목했다. 수소결합은 분자와 분자 사이에서 작용하는 비교적 약한 힘으로, 주변 구조를 일정한 형태로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연구팀은 플라빈의 일부 화학 구조를 변형한 ‘플라빈 유도체’를 이용해 망간부터 아연까지 서로 다른 금속을 넣되, 각 금속을 둘러싼 분자들이 똑같은 방식으로 결합하도록 만들었다. 금속 주변의 기본 조건을 같게 한 뒤, 수소결합이 각 금속의 안정성에 어떤 차이를 만드는지 살펴본 것이다.
그 결과 수소결합이 특히 구리가 안정해지는 데 필요한 구조 변화를 막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구리는 주변의 결합 구조를 조금 변형해 자신에게 유리한 형태를 만들면서 더욱 안정해지는 특성이 있다. 사람이 몸을 조금 움직여 자신에게 가장 편한 자세를 찾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연구팀이 만든 구조에서는 주변의 수소결합이 구리를 단단히 잡아주면서 이러한 ‘편한 자세’를 취하기 어려워졌다. 그 결과 구리가 안정해지는 데 얻었던 이점이 줄어들면서, 기존과 반대되는 ‘반(反) 어빙-윌리엄스 경향(anti-Irving–Williams trend)’이 나타났다.
중요한 것은 구리가 ‘결합 1등’에서 밀려났다는 것 자체보다, 금속마다 정해져 있다고 여겨졌던 ‘잘 붙는 순서’를 주변 환경을 바꿔 조절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여러 금속이 섞여 있을 때 원하는 금속은 잘 붙게 하고 다른 금속은 덜 붙게 만들 수 있다면, 필요한 금속만 골라내거나 회수하는 기술에 활용할 수 있다.
이 원리는 원하는 금속이 더 잘 작용하도록 주변 환경을 조절하는 촉매 설계에도 활용될 수 있다. 또한 우리 몸의 단백질과 효소가 철·구리·아연 등 여러 금속 가운데 필요한 금속을 골라 사용하는 것처럼, 생명체의 작동 원리를 본떠 필요한 기능을 구현하는 ‘생체모사 시스템(biomimetic system)’을 설계하는 데도 새로운 방법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된다.
백윤정 교수는 “이번 연구의 핵심은 구리의 안정성을 낮췄다는 것 자체보다, 금속이 가진 고유한 특성으로 여겨졌던 결합 안정성의 순서를 주변 환경을 통해 바꿀 수 있음을 보여줬다는 데 있다”며 “앞으로 원하는 금속을 선택적으로 붙잡거나 반응시키는 새로운 화학 시스템을 설계하는 데 활용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덴마크에서 개최된 국제배위화학학술대회(International Conference on Coordination Chemistry, ICCC)에서도 주목받았다. 제1 저자인 KAIST 화학과 임하늘 석박사통합과정 학생은 이번 연구를 포스터로 발표해 한국인 학생으로는 유일하게 우수 포스터상을 수상했다. 임하늘 학생이 제1 저자로 참여한 이번 연구는 미국화학회(ACS)가 발행하는 국제 학술지 ‘미국화학회지(Journal of the American Chemical Society, JACS)’에 9월 3일자로 게재됐다.
※ 논문명: When Copper Falls: Overriding the Irving–Williams Stability Trend through Outer-Sphere Hydrogen Bonding, DOI: 10.1021/jacs.6c10430
※ 저자 정보: 임하늘(KAIST, 제1 저자), Neetu Singh(KAIST, 공동 제2 저자), 권성연(IBS, 공동 제2 저자), 서창현(KAIST, 제3 저자), 정낙관(KRISS, 제4 저자), 백윤정(KAIST, 교신저자) 등 총 6명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원하는 개인기초연구사업의 ‘우수신진연구’ 과제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또한 KAIST 국제협력처의 ‘신진연구자 대상 미국 국제공동연구 오픈트랙 사업’및‘KARA Partnership 연구협력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코엔자임 Q10’모방...망가지지 않는 촉매로 재탄생
건강기능식품으로 널리 알려진 ‘코엔자임 Q10(Coenzyme Q10)’과 같은 우리 몸 속 분자를 활용해,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방식을 모방한 신개념 촉매 기술이 개발됐다. 국내 연구진은 생체 에너지 생성에 핵심적인 분자를 이용해 스스로 반복 작동하는 분자 촉매 시스템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우리 대학은 화학과 백윤정 교수 연구팀이 기초과학연구원(IBS, 원장 직무대행 김영덕) 권성연 박사와의 공동연구를 통해, 코엔자임 Q10으로 알려진 ‘퀴논(Quinone)’이 금속‘티타늄(Ti)’과 결합해 작동하는 새로운 분자 촉매 시스템을 개발했다고 26일 밝혔다.
퀴논은 체내에서 전자와 수소를 전달하며 에너지 생성에 관여하는 핵심 분자다. 이는 세포의 ‘에너지 발전소’로 불리는 미토콘드리아에서 전자와 수소를 함께 이동시키며 에너지를 생성하는 메커니즘에서 착안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중요한 기능에도 불구하고, 퀴논은 인공 화학 반응에서는 반응 과정 중 불안정한 중간체(세미퀴논)가 형성돼 쉽게 분해되거나 한 번 반응 후 소모되는 한계가 있었다.
연구팀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퀴논에 값싸고 풍부한 금속인 ‘티타늄(Ti)’을 결합하는 분자 설계 전략을 도입했다. 금속 중심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반응 과정에서 생성되는 불안정한 세미퀴논 중간체를 안정화시켜, 전자와 수소가 함께 이동하는 반응을 반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촉매 시스템을 구현했다.
이번 연구는 생체 에너지 전달 분자인 퀴논의 반응성을 금속 화학적으로 제어해 촉매로 활용한 최초 사례로, 불안정한 반응 중간체의 안정화가 촉매 설계의 핵심 요소로 활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화학 반응을 정밀하게 제어하는 차세대 인공 촉매 개발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백윤정 교수는 “자연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인공 시스템에서는 활용이 어려웠던 퀴논의 한계를 금속 화학을 통해 극복했다”며, “이번 연구는 생체 분자를 기반으로 한 차세대 에너지·환경 촉매와 생체 모사 화학 기술 설계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고 말했다.
KAIST 화학과 원창현 석박사통합과정이 제 1저자로 참여한 이번 성과는 미국화학회(ACS)가 발행하는 국제 학술지 미국 화학회지(Journal of the American Chemical Society)에 2월 20일 자 게재되었다.
※ 논문명: Orchestrating the Semiquinone Stability for Catalytic Proton-Coupled Electron Transfer, DOI: 10.1021/jacs.5c21171
※ 저자 정보: 원창현 (KAIST, 제1 저자), 권성연 (IBS, 제2 저자), 김동욱 (IBS, 제3 저자) 및 백윤정 (KAIST, 교신저자) 포함 총 4 명
해당 연구는 과기정통부가 지원하는 개인기초연구사업의‘우수신진연구’와 한국연구재단의 글로벌 선도연구센터 (SRC), 산업통상자원부가 지원하는‘소재부품개발사업’과제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비타민B2가 금속을 만나 환경·건강 지키는 인공효소로 재탄생
우리가 먹는 비타민 B2(리보플라빈)는 음식이 몸속에서 에너지로 바뀌도록 돕는 중요한 보조효소 역할을 한다. 한국 연구진이 이 리보플라빈(플라빈)에 금속을 결합해, 전자를 전달하는 리보플라빈의 기능에 금속의 반응 조절 능력을 더한 새로운 인공 효소를 만드는 데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 이 기술은 자연 효소보다 더 정밀하고 안정적으로 작동해, 에너지 생산과 환경 정화, 신약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우리 대학 화학과 백윤정 교수 연구팀이 기초과학연구원(IBS 원장 노도영) 권성연 박사와 공동연구를 통해, 플라빈이 금속 이온과 결합할 수 있는 새로운 분자 시스템을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고 11일 밝혔다.
그동안 플라빈은 질소와 산소가 복잡하게 얽힌 고리 구조를 가져 금속이 선택적으로 결합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가 있어,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금속과 결합한 플라빈’을 구현하지 못했다.
연구팀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플라빈 내에서 금속이 결합할 수 있는 자리를 분자 수준에서 설계하고, 금속을 붙잡는 리간드(ligand) 구조를 정밀하게 배치하는 금속화학적 접근법을 적용했다.
이를 통해 금속 주변의 전자적·공간적 상호작용을 정교하게 제어함으로써, 플라빈-금속 결합체의 안정적 합성에 성공했다.
이번 성과는 플라빈이 지닌 고유한 특성과 금속의 반응성을 하나의 시스템 안에 결합시킨 최초의 사례로, 화학 반응을 미세하게 조절하는‘금속 기반 인공 효소’개발의 가능성을 열었다.
백윤정 교수는 “자연에서 발견되는 플라빈의 한계를 넘어 생체 분자를 금속화학의 새로운 구성 요소로 확장했다”며 “이번 연구는 생체 분자를 기반으로 한 차세대 촉매와 에너지 전환 소재 설계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고 말했다.
KAIST 화학과 니투 싱(Neetu Singh) 박사와 임하늘 석박사통합과정이 공동 제 1저자로 참여한 이번 성과는 미국화학회(ACS)가 발행하는 국제 학술지 무기화학지(Inorganic Chemistry)에 11월 5일 자 게재되었으며, 창의성과 완성도를 인정받아 표지 논문으로 선정되었다. 또한, ACS가 발행하는 90여 종의 저널 전체에서 하루 한편의 대표 논문을 선정하는 ACS Editors’Choice에 선정되어, 연구의 중요성을 인정받았다.
※ 논문명: Tautomerizable Flavin Ligands for Constructing Primary and Secondary Coordination Spheres, DOI: 10.1021/acs.inorgchem.5c03941
※ 저자 정보: Neetu Singh (KAIST, 공동 제1 저자), 임하늘 (KAIST, 공동 제1 저자), 권성연 (IBS, 제2 저자), 김동욱 (IBS, 제3 저자) 및 백윤정 (KAIST, 교신저자) 포함 총 5 명
해당 연구는 과기정통부가 지원하는 개인기초연구사업의‘우수신진연구’와 산업통상자원부가 지원하는 ‘소재부품개발사업’과제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세계 최초 플라빈 빛 파장 설계 성공, 의료·환경 혁신
플라빈은 우리 몸 등 생명체 내의 에너지 생산과 생화학 반응에 관여하는 중요한 조효소이자 특정 색의 빛을 방출하는 형광 분자다. 하지만 자연계의 플라빈은 대부분 파란색에서 초록색 영역까지 짧은 파장의 빛을 낼 수 있어, 그보다 긴 파장인 적외선 영역까지는 확장되기 어렵다. KAIST 연구진이 기존 한계를 극복하고 플라빈이 내뿜는 형광 파장을 근적외선까지 확장하여 의료·환경·에너지 분야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우리 대학 화학과 백윤정 교수 연구팀은 근적외선 파장에서 발광이 가능한 5개의 고리 구조를 가진 새로운 오환형 플라빈 분자를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백윤정 교수 연구팀은 전통적으로 세 개의 고리를 갖는 플라빈 구조에서 플라빈의 핵심 구조를 5개의 고리로 확장하고, 여기에 산소 및 황 등 이종 원자를 정교하게 도입함으로써 분자의 전자 구조를 정밀하게 조절하는 새로운 합성 전략을 제시했다.
특히 이번에 개발된 분자는 적외선에 가까운 짙은 붉은색 및 근적외선 영역의 빛을 낼 수 있어, 기존 플라빈 색소가 낼 수 있었던 색의 범위를 획기적으로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 결과, 황이 포함된 구조체는 772 nm에 달하는 근적외선 영역에서 발광하며, 이는 지금까지 보고된 플라빈 유도체 중 가장 긴 파장이다. 또한 이 분자는 기존의 플라빈에서 드물게 관찰되던 준가역적인 산화 특성을 나타내어 전기화학적 기능성까지 동시에 갖춘 다기능성 분자 플랫폼으로 주목받고 있다.
연구팀은 분자의 구조를 미세하게 조절함으로써, 빛을 어떻게 흡수하고 방출할지를 원하는 대로 설계할 수 있게 되었고, 전기 신호를 전달하거나 변환하는 능력 또한 함께 제어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이번 연구는 기존 플라빈의 한계를 뛰어넘어 빛의 파장을 바꿈으로서 활용 기술과 응용 범위를 넓힐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예를 들어, 근적외선(NIR) 같은 긴 파장의 빛을 통해 몸 속 더 깊이 정확하게 진단·치료하게 하며, 오염이나 독성물질이 특정 빛에 반응하도록 설계도 가능하며, 긴 파장의 빛을 흡수해서 친환경 에너지로 만들게 하는 등 발광 파장과 전자 특성을 정밀하게 제어하는 새로운 플랫폼을 제시하였다.
백윤정 교수는 “플라빈의 빛 파장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원하는 상황에 맞게 빛을 자유롭게 설계하고 활용할 수 있다는 뜻으로, 앞으로 우리 손으로 원하는 색과 성질을 가진 분자를 정밀하게 디자인하고 만들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라며, “이는 의료, 환경, 에너지 등 빛 기반 기술이 적용되는 수많은 분야에서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는 기반 기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해당 성과는 세계적인 국제 학술지 Nature사가 발행하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4월 15일자로 게재되었다.
※ 논문명 : Expanding the Chemical Space of Flavins with Pentacyclic architecture
※ 저자 정보 : 서다영 (KAIST, 제1 저자), 권성연 (기초과학연구원, 공동 제2 저자), 윤가혜 (KAIST, 공동 제2 저자), 손태일 (KAIST, 공동 제2 저자), 원창현 (KAIST, 제3 저자), Neetu Singh (KAIST, 제4 저자), 김동욱 (기초과학연구원, 제5 저자) 및 백윤정 (KAIST, 교신저자) 포함 총 8 명 DOI: 10.1038/s41467-025-58957-2
한편, 이번 연구는 과기정통부가 지원하는 개인기초연구사업의‘우수신진연구’와 산업통상자원부가 지원하는‘소재부품개발사업’과제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